농촌에는 사람들이 타지역으로 나가버려고 집들은 비어있는 실정이다.
젊문사람들은 도시로 돈을 별기위하여 나가버리고 농촌에는 노인들만 남아있다가 돌아가시던가 하면서 부터는 집둘은 비기시작 하였다.
농사를 지어바야 인건비도 나오지 않고 빗만지계 되는 실정은 농촌이다.
그러하니 암자둘도 비어있는 실정이다
500백년이된 암자 뒤쪽의 매룡나무는 말이업고 가는 새월이 말해주는 것이다.
본래 남원군(南原郡) 주촌면(朱村面) 지역으로 웃주례기, 주여기 또는 주천(周川)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상주리(上周里), 하주리(下周里) 일부가 병합되어 주천리(周川里)라 하고 주천리에 편입되었다.
1650년경(효종 초) 협계 태씨(浹溪太氏)가 들어와 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나 형편이 어려워지자 태씨는 다른 지방으로 분산되고 지금은 1700년경 진주 소씨(晉州蘇氏) 소경준(蘇炅俊)의 7대 할아버지가 들어와 정착을 하면서 그 자손들이 번창하자 소씨 사람들은 이곳을 소씨촌(蘇氏村)이라 부를 만큼 소씨들이 번창하였다.
마을 뒷산의 모습이 연꽃이 봉오리마다 활짝 피어있는 것같은 연화체상(蓮花 狀)으로 생겼고, 마을이 아담하고 토질이 비옥하고 용수가 풍부하므로 생활이 안정되어 학업에 열중하여 주역(周易)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집집마다 주역을 많이 읽으니 지나가던 승려가 듣고 주례기(周禮基)란 별명 지은 것이 마을 이름이되었는데 이 마을은 주례기 위쪽에 있어 웃주례기로 불러왔다. 현재 26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동마저수지가 있어 농사짓기에는 불편함이 없다.
남원시에서 주천을 지나 수지로 가는 순환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교통량이 많은 편이며 젊은층은 적고 노인들이 많다. 노동인구가 없기 때문에 농업이외의 소득사업이 없어 하주마을에 비해 소득 수준이 낮은 편이다. 소씨 일가가 많기 때문에 단결이 잘되고 예의가 바르며 마을이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