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오죽헌 경내의 어제각과 격몽요결
작성자
조거현
작성일
2008-09-21
조회수
3105
* 오죽헌 경내의 어제각과 격몽요결 *
오죽헌 외부, 내부의 당호 현판
학문을 숭상하고 학자를 가까이 했던 정조임금이 강릉 오죽헌에 율곡의 벼루와 친히쓴 격몽요결이 전하여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들을 가져오게 명하여 친견하고 벼루뒤에 어제시를 남겼고, 두가지 물품을 잘 보관하라 명하여 에제각을 짓게하고는 사액 현판까지 내렸다. 70년대 어제각을 헐고 그자리에 문성사를 지었다. 그뒤 80년대에 어제각을 현위치에 복원하여 짓고 복제유물을 전시하게 되었다.

* 이상은 옮겨지은 어제각에 보존하고 있는 율곡 선생 집필의 격몽요결 과 쓰시던 벼루인 용연(두가지 유물은 복제품이다)

* 정조께서 율곡 선생의 용연을 친견하시고 벼루뒤에 남긴
 어제시를 풀이한 내용이다.
 
이이 수결본 격몽요결 ; 보물 602 호
격몽요결은 율곡 이이(1536∼1584)선생이 42세 때인 선조 10년(1577) 관직을 떠나 해주에 있을 때 처음 글을 배우는 아동의 입문교재로 쓰기 위해 저술한 것이다.
이이는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정치가로, 23세 때 별시에서 장원을 한 후 벼슬길에 올랐고, 호조좌랑, 예조좌랑, 우부승지를 거쳐 47세 때 이조판서에 임명되었다. 이이의 성리학 사상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이외에도 <시무육조>를 세우고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 그가 죽은 후 전국 20여개 서원에 위패가 모셔졌으며, 시호는 문성이다. 저서로는 『격몽요결』 외에 『성학집요』, 『기자실기』, 『만언봉사』 등이 있다. 더욱이 이『격몽요결』은 여러차례 목판본이나 활자본으로 출간되어 왔으나, 유일한 친필본은 율곡의 이모가 시집간 권씨집안에 율곡의 유품과 함께 대대로 소장되어 왔으며, 이것은 율곡이 친히 쓴 친필원본으로 그 가치가 크다고 평가된다.
오죽헌이 오죽헌인 이유가 되는 오죽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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