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사(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1174) 가는길은 다양합니다. 오늘은 얼마전 개통한 익산 순천방면 고속도로를 달려 순천에서 강진읍을 지나 성전 삼거리에서 광주방면 13번을 타고 무위사 입구 표지판을 보고 찾아갑니다.
무위사는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원효대사가 관음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은 절로,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공사가 진행되면서 이름도 무위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인위적 조작이 닿지 않은 맨 처음의 진리를 깨달으라는 ‘無爲’의 절이름처럼, 무위사는 월출산 남동쪽 기슭에서 한 점의 허세나 허튼 구석 없이 단정한 모습으로 찾는 이를 맞아줍니다.
사찰입구에 해당하는 천왕문을 들어서면 극락보전을 향해 박석이 깔려 있는 누각길을 오르게 됩니다.왼쪽으로 범종각이 자리하고 있고,그 뒤로 극락보전에서 떼어낸 벽화를 보관하고 있는 성보박물관이 있습니다.극락보전 후불벽화가 통째로 전시되어 있으니 벽화보존각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박물관에는 극락보전 벽에있던 벽화가 보관되고 있습니다.즉 삼존불화, 아미타래영도, 오불도 2점, 관음보살도를 비롯한 보살도 5점, 주악비천도 6점, 연화당초향로도 7점, 보상모란문도 5점, 당초문도 1점, 입불도 1점등입니다.
누각 오른쪽으로는 커다란 고목들이 서있고 종무소 건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누각 정면으로 막돌과 다듬은 장대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조선 초기의 건물인 국보 제13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康津 無爲寺 極樂寶殿)이 단아하고 정갈한 모습을 드러내며 서 있습니다.
세종 12년(1430)에 지었으며,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입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으며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조각이 매우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극락전 안에는 아미타삼존불과 29점의 벽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불상 뒤에 큰 그림이 남아 있고 나머지는 보존각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극락보전 후불벽 앞면에 그려져 있는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는 국보 제313호입니다.
앉은 모습의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관음보살이, 오른쪽에는 지장보살이 서 있는 구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벽화는 온화한 색채나 신체의 표현 등 고려시대의 특징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간결한 무늬나 본존불과 같은 크기의 기타 인물 표현 등 조선 초기 불화의 새로운 특징들이 잘 나타나 있어 고려식 조선 초기 불화연구에 중요한 자료입니다.
ⓒ문화재청
강진 무위사 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제1312호)은 고려 후기의 양식을 계승하면서 조선 초기 불상의 특징으로 변형되고 있는 과도기적인 작품으로서 그 의의가 클 뿐만 아니라, 조선 중기 불상의 연원이 되는 시원적인 작품으로서도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문화재청
같은 축선상의 오른쪽으로 명부전이 있고, 축대 아래로는 요사채가 있습니다.
극락보전 뒤로는 미륵전과 산신각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앞으로 선각대사편광탑비(보물 제507호)와 삼층석탑(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6호)이 있습니다.
선각대사는 신라 말의 명승으로, 당나라에 건너가서 14년 만에 돌아와 무위사에 8년간 머물렀습니다.
고려 태조 원년(918)에 54세의 나이로 입적하자 고려 태조가 ‘선각’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이름을 ‘편광탑’이라 하였다. 이 비는 대사가 입적한 지 28년 만에 세워진 것이다. 비석의 글은 최언위가 짓고, 글씨는 유훈률이 구양순체의 해서로 썼습니다. 조각수법이 같은 시대의 다른 석비에 비해 사실적이며, 조각예술로서의 우수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석탑(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6호) 은 현재 극락전 오른쪽 선각대사 편광탑비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다. 전형적인 2층 기단의 3층석탑으로 각 부재가 잘 조화되고 균제된 양식이다. 조성연대는 옆에 있는 선각대사편광탑비(946년)와 같은 시대이거나 아니면 이 연대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고려초기로 추측됩니다.
무위사 일주문에서 월남사지 가는 방향으로 언덕 하나를 넘으면 월봉 마을에 설록다원이 있습니다. 아모레 퍼스픽에서 운영하는 녹차밭인데 현대적인 방법으로 차를 생산하는곳입니다.지금은 썰렁하지만 푸른빛이 나는 봄이 되면 10만평이 넘는 차밭의 모습은 한폭의 그림이 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