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경주]불국사 극락전,금동아미타여래좌상
작성자
차수정
작성일
2011-04-23
조회수
1196
▲2010.8.14 (土)
 
 
 
 
극락전은 불교에서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사찰 당우(堂宇)이다.
연화, 칠보교와 안양 문을 거쳐 올라가도록 되어있으며 신라시대의 기단 위에 건물을 새
로 지었다.
조선시대의 불전 중에는 임진왜 란으로 소실된 직후의 복구 과정에서 긴급히 중창되었다
가 좀 더 여유가 생긴 18세기에 들어와 다시 중창하는 경우가 많은데, 불국사 극락전도 그
러한 이유 때문에 1750년에 다시 중창된 것으로 생각된다. 일제시대인 1925년에 중수한
바 있고,1973년에 다시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극락전의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국보 제27호)
 
 극락전에 모셔진 금동아미타불좌상은 대좌와 광배는 소실되었고, 현재는 불단 위에 새로 마련한 수미좌형식의 연화대좌 위에 모셔져 있다. 높이는 166cm이고, 양 무릎 너비는 125cm이다. 결가부좌한 자세이며 자비스럽고 원만한 얼굴은 정면을 보고 있고, 가사를 왼쪽 어깨에 걸친 우견편단(右肩偏袒)을 하고 있으며, 수인은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중 ‘하품중생인’을 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하품중생인과 비교해 양손의 좌우 위치가 서로 바뀌었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서방극락세계에 살면서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부처로 무량수불
(無量壽佛) 또는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고도 하는데, 아미타불의 광명은 끝이 없어 백천
억 불국토를 비춘다고 하여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 하고, 수명 또한 한량없어 백천억 겁
으로도 헤아릴 수 없다고 하여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 한다. 8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조
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6호), 백률사 금동
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함께 남북국시대 신라의 3대 금동불상으로 일컬어지고 있
다.
 
 
 
2007년 발견된 극락전 현판 뒷쪽에 조각되어 있는 복돼지
 
 
불국사 황금돼지
 
경주 불국사 극락전 처마밑 현판 뒤에 숨겨진채 1,200여년을 잠자고 있던 황금 돼지 목조
조형물이 한 관람객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어 2007년 2월 언론에 알려젔다. 불국사 황금돼
지는 길이 50㎝ 가량에 나무로 다듬어져 있으며 황금빛을 띠고 있으나 극락전 정면 처마
밑에 현판으로 가려져 그동안 눈에 띄지 않았지만 최근 존재가 확인돼 관광객들에게 주목
을 받고 있다.
 
 불국사의 극락전은 국보 27호인 금동 아미타 여래좌상이 있는 곳이다. 이 극락전이 중건
된 것은 조선 영조 때인 1750년, 그러니까 257년 만에 황금 돼지가 알려지게 된것이다. 하
필이면 왜 극락전 현
판 뒤 처마밑에 이처럼 황금색을 띤 목조 돼지를 숨겼을까.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두 가지
설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불국사를 창건한 김대성이 토함산에 자주 사냥을 다녔고, 곰을 사냥한 그날밤 꿈에 그 곰
이 나타나 '나는 너를 해치지 않았는데 너는 왜 나를 죽였느냐'고 항의한 후 김대성은 살
생을 삼가고 불가에 입문했다는 설이 있다. 따라서 김대성이 불국사를 창건하면서 다시는
살생을 하지 않기로 맹세하기위해 몰래 처마밑에 돼지형상을 만들어 숨겼다는 것.
 
또 하나는 이 사찰을 중수하던 장난끼 많은 스님이 내림마루나 추녀마루 밑에 용이나 봉
황을 만들어넣는 대신 현판 뒤 처마밑에 몰래 이 돼지상을 만들어 숨겼다는 설화도 있다.
 이밖에도 경주지역 향토 사학계의 한 인사는 "대개 사찰을 지을 때 용마루에 잡귀신을 쫓
기 위해 돼지상을 얹기도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돼지 형상이 고서 서유기에 나오는
저팔계를 형상화한 것으로, 사찰 내 잡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 영남일보 2007-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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