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전라북도 아막성(阿莫城) 기념물 제 38호 남원시 아영면 성리 83번지,/이계석
작성자
이계석
작성일
2012-05-24
조회수
1451

2012년 5월 24일 아막산성 전라북도 기념물 제38호와 실상사 앞 중근리 상황마을 산불진화 작업을 하였다,
이산불은 원인을 알수 업지만 봄에 간별하고 난뒤아래부분에서 산불이 발생되어 산정산 부근까지 올라부터 살림청 핼기5대와 군소방대원 소방차2대 남원시청 진화차 6대, 공무원 진화대원등 150여명이 출동하여 진화작업을 마무리 하였다,


원인은 이곳으로 지리산 둘레길이 있어 많은 둥산객과 둘레객들이 단여가는 남원 인월-상황리 3구간으로 2012년 5월 23일 오후 4시경에 산불이 발생되어 2012년 5월 24일 낮 목요일날 산불진화 후 완료작업을 마쳤다,

성터는 동북쪽을 접한 방형을 이루고 있는데, 북변(北邊) 수구(水口:물이 흐르는 곳)에 북문 터(北門址), 서쪽중앙(西邊中央)에 서문 터(西門址), 동남쪽 모퉁이(東南隅)에 가까운 동변(東邊)에 동문 터(東門址)가 남아 있다.

북쪽은 성벽이 완전히 남아 있으며, 길이 15.07m로 거의 직선으로 3개소에 적태(適台)를 돌출시켰다. 동쪽도 거의 직선으로 길이 147.1m, 서쪽 길이 126.9m, 북쪽은 곡선을 이루는데, 길이 208.1m, 주위는 총 632.8m에 이른다.

성이 높이는 약 4.0m에 이르며, 상변폭(上邊幅)은 3.5m이다.

그러나 동벽은 위쪽의 폭(上邊幅)이 7.5m로서 가장 넓으며, 내벽은 약 1.0m에 불과하다. 남쪽 성벽의 능선 연결부분에는 못을 파서 물이 흐르도록 한 환호(空濠)가 설치되어 있다. 성안에서는 삼국시대의 기와조각, 백제계의 도자기 조각 등이 퇴적되어 있는데, 북문지 수구(北門址 水口) 동쪽에는 지름 1.5m의 돌로 쌓아 만든 원형의 우물터(井戶址)가 있다.


아영면 아영고원에 있는 돌로 쌓은 산성으로 아막성, 성리산성 등으로 불리운다.
아영고원은 운봉고원과 황산의 산줄기로 구획되어 있는데, 이 일대는 백제의 아막산, 신라의 모산성 등으로 불렀으며, 역사상 신라와 백제간에 격렬한 쟁탈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이곳은 본래 가야(伽耶)의 영토였으나 신라의 영역으로 돌아가자, 신라 서쪽 주변의 침공에 주력하던 백제는 무왕(武王) 3년(602)에 아막성(阿莫城)을 공격하여 신라장군 무은(武殷)을 사살하자, 그 아들인 화랑(花郞) 귀산(貴山)이 취향과 함께 돌진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백제는 무왕 17년에 또다시 공격하여 모산성을 함락하였고, 동왕 25년에는 드디어 이 지역을 차지하여 함양 등 6성을 점령하여 경상도 방면으로 진출하였다.

이러한 형세에서 이 성리산성(城里山城)은 부근의 성터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견고하여, 백제측의 근거지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이를 「아막산성(阿莫山城)」으로 비정(比定)하고 있으나, 단정할 근거는 아직 없다.


아막성(阿莫城) 돌로 쌓은 이 산성은 아영고원 줄기에 자리한 아막산 봉우리를 에워싼 것으로 둘레는 633m 가량이다. 이곳은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 사이에 격렬한 쟁탈전이 벌어진 곳으로, 신라에서는 모산이라 불렀다.

성터는 대체로 사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동·서·북쪽 테두리에서 각각의 성문터를 찾아 볼 수 있다. 북쪽의 성벽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는데, 네모 반듯하게 다듬은 돌을 가지런하게 쌓아 정교함을 보여준다.

북문터 부근에는 직경 1.5m의 돌로 쌓은 둥근 우물터가 있다. 성안에는 삼국시대의 기와 조각, 백제시대의 도자기 조각 등이 쌓여 있다.

 

실상사백장암석등 [ 實相寺百丈庵石燈

전라북도 남원군 산내면 대정리 백장암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

높이 2.5m. 보물 제40호. 연화대석 위에 간주(竿柱)를 세우고 그 위에 연화대석을 놓았으며, 화사석(火舍石)과 옥개석, 상륜부까지 전체의 부재가 완전한 석등이다. 8각의 지대석 위에 연화대석을 마련하였는데 모두 하나의 석재로 이루어졌다.

지대석 위는 낮은 16각의 측면을 이루었는데 각 면에는 통식(通式)을 장식한 작은 안상(眼象) 1구씩을 조각하였고, 그 위에 단엽의 8판복련(八瓣覆蓮)을 조각하였으며, 연화문 안에는 화사한 꽃문양을 장식하였다. 연화대석의 상면 중심에는 간주의 굄대를 마련하였는데 원형으로서 측면에는 16판의 단엽앙련(單葉仰蓮)을 둘렀다.

간주는 8각으로 아무런 조식이 없다. 상대석은 8각이며 하면에 받침 1단이 모각되었고 측면에 앙련8판이 둘러졌는데 단엽으로 연판 안에는 작은 꽃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앙련의 윗부분에는 8각의 갑석형을 둘렀고 그 위에 난간을 장식하였는데, 이렇듯 앙련대석에 난간을 둘러 장식한 석등으로는 유일한 예이다.

화사석은 8각으로 4면에만 장방형의 화창구가 둘러져 있으며 다른 4면은 아무런 조각이 없다. 화창구에는 창문을 고정시키기 위한 못구멍이 있는데 이것은 신라석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8각 옥개석은 하면에 화사석을 삽입하도록 파놓았으며, 처마 끝에는 1단의 턱을 마련하여 낙수면에서 흐르는 물을 막도록 하였다.

낙수면은 약간 경사를 보이고 있으나 전각부에 이르면서 완만해졌고 합각선은 뚜렷하며, 각 모서리의 전각에 반전이 뚜렷하여 경쾌한 옥개석임을 느끼게 한다. 상륜은 원주형으로 이루어져 몇 줄의 선대를 조각하고 5중의 연봉을 장식하였다. 이 석등은 하대의 연화대석과 상대의 난간에서 동자주(童子柱) 등 주목되는 부재가 많은데, 각 부의 비례가 잘 맞는 우수한 석등의 하나이다.

진화대원들과  함께  뒷불정리를  하면서  타고난  불씨가  다시  살아날까  하여  정리작업을  하고  있다,  이곳  산을  넘무면   함양군   마천면이  되는데,어재  살림청  핼기로  물을  뿌리고  나면  진화대원들이   마루리를  하는  것인대  하마터면  대형  산불인지라  소중한  문화유산이  산재  된체  방심하면  대형으로   번진다고  한다,

불이  지나가면서  타고난  자리에는  재만남아있다,

지리산  둘레길  3구간  이모습  전경,

새로  뚤린  도료  번암면에서   아영면  구간아영  성암리  마을  입구  백두대간  줄기,

이  당산나무  에서 매년  제사를  올리던   제단이람니다,

이것이  홍부  묘라카나,

홍부  집터  디딜방아간,

홍부내  집이라카이,

홍부집터  장독대,

멍청하이  화장실이   혼부내  집보다  좋다고  하니, 화장실에서  밥먹고  자야지,,,남원  사람들은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라   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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