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운흥사[雲興寺]#2
작성자
염우섭
작성일
2007-03-18
조회수
1616

 운흥사[雲興寺]#2

경남 고성군 하이면 와룡리의 운흥사 전경 
파손된 당간지주(탱화를 걸기도함)
 운흥사소장경판[雲興寺所藏經板 :시도유형문화재 제184호]
운흥사는 모두 16종 194판의 불교관련 문헌 목판을 소장하고 있는데 이 목판들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에 새겨진 것들로 대승경전과 불교의식관련 문헌들이다. 이 가운데 정토신앙의 근본경전인 아미타경은 세조 10년(1464)에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것을 숙종 28년(1702)에 다시 그대로 새겨 간행한 복간본이다. 거의 대부분의 판들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어 조선 후기 절의 목판인쇄문화와 운흥사의 격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운흥사괘불탱및궤[雲興寺掛佛幀및櫃:보물 제1317호] 
이 탱화는 서 있는 모습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여러 존상을 화면 가득 그린 영산회 괘불탱이다. 괘불탱은 본존불을 화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그리고 그 양옆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배치하였다. 화면 상단에는 관음보살과 세지보살, 4구의 타방불이 자리하였다. 본존불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옷을 입고 있는데, 오른손은 길게 내려뜨리고 왼손은 가슴께로 들어 올렸다.
 
장대한 신체와 더불어 움추린 듯 직각을 이루는 넓은 어깨에 네모난 얼굴과 어깨에 닿을 만큼 길다란 귀를 갖추고, 두터운 옷을 입은 듯 표현되어 한층 중후함을 느끼게 한다. 둥그스름해진 사각형의 얼굴에 눈썹은 약간 쳐지고 입은 작게 묘사되었으며, 눈썹과 콧수염ㆍ 턱수염을 녹색으로 굵게 그리고, 입술은 선홍색으로 표현하고 있다.
 
본존을 향하여 몸을 살짝 틀고 있는 문수와 보현보살은 연꽃 위에 서서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두손으로 여의(如意)와 연꽃가지를 받쳐들고 있는 모습이다. 입고 있는 옷의 색채와 무늬, 손모양만 서로 다를 뿐 신체 및 발 등 자세는 거의 똑같다. 어깨 위로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과 여러 장식, 머리묶음 띠, 가슴장식, 팔찌, 귀고리 등도 매우 비슷하다. 이 그림에서의 가장 큰 특징은 빈틈없이 꽉 채워져 있는 여러 문양들과 각 인물마다 표기되어 있는 붉은색 범자(梵字)이다. 문양은 연꽃무늬, 덩굴무늬, 구름무늬와 둥근무늬, 잔꽃무늬, 점무늬인데, 그 중에서도 덩굴꽃무늬와 연꽃무늬, 구름무늬는 삼존의 주된 문양으로서 화면 전체에 걸쳐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범자는 각 인물의 이마 위 중앙과 두 눈썹 위, 눈꺼풀, 중간계주와 정상계주 및 육계 정상 또는 보관 하단과 정상, 목 윗부분중앙과 가슴 위ㆍ아래, 그리고 발목 부분에 씌어져 있다.
 
이 괘불탱은 조선 영조 6년(1730)에 승려화가 의겸 등에 의해 그려졌다. 신체비례가 적당한 인물의 형태와 이목구비의 표현, 조화롭고 밝은 색채의 사용, 세련된 필치의 화려하고 정교하고 다양한 문양, 주된 인물을 중앙에 크게 그린 다음 기타 인물을 뒤로 물러나게 배치하는 구도법 등은 의겸의 특징적인 표현수법으로서, 진주 청곡사영산회괘불탱(국보 제302호)과 비교해 보아도 손색이 없다.
 
괘불을 보관하는 궤는 뚜껑 윗부분 일부가 결손된 것 외에는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괘불탱 조성 1년 뒤인 조선 영조 7년(1731)에 만들어진 이 궤는 '만·왕·십자(卍·王·十字) 및 범자(梵字)' 무늬가 투각되어 있는 궤 부착의 정교하고 다양한 형태의 금속장식 또한 보기 드문 예로 당시의 금속공예 연구에 귀중한 예라 할 수 있다. 
관음탱화[觀音幀畵:시도유형문화재 제355호] 
중생들을 고난으로부터 구제하여 자비로써 돌봐주는 관세음보살을 단독으로 그린 그림이다. 머리에 화불이 그려진 화려한 보관을 쓴 관세음보살은 정면을 향하여 앉아 있고, 오른손은 무릎 뒤로 살짝 감추고 왼손은 왼 무릎위에 올려 놓았다. 양어깨를 감싼 옷은 무릎 아래쪽까지 내려져 있고 가슴부분은 구슬장식으로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모습이다. 관세음보살의 머리와 몸 뒤로는 둥근
광채(두광·신광)가 표현되었으며, 특히 쉬고 있는 듯 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보살의 발모양이 매우 흥미롭다. 관세음보살의 자비롭고 온화한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감로탱화[甘露幀畵:시도유형문화재 제356호]
효(孝) 사상과 결합하여 크게 성행한 감로탱화는 조상의 극락왕생을 위해 그린 불교그림으로, 부처를 극진히 대접하여 조상의 영혼이 지옥세계로부터 구제되기를 간절하게 기원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은 크게 세부분으로 표현되었다. 그림의 맨 윗부분에는 불·보살의 모습이 표현되었고, 중간에는 부처님께 올리는 여러가지 음식을 차려 놓은 성반(盛飯)이 마련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는 먹지 못해 고통받는 귀왕과 함께 지옥장면, 싸우는 모습, 형틀에 묶여있는 모습, 광대패놀이, 호랑이에게 쫓기는 모습 등등 인간이 그 업보에 따라 겪게 되는 갖가지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미타회탱화[彌陀會幀畵:시도유형문화재 제357호] 
서방 극락세계를 주관하는 아미타부처를 묘사한 탱화로, 화면 가운데 주불인 아미타부처를 크게 배치하였다. 아미타불은 양어깨를 모두 덮고 있는 옷을 입고, 오른발을 왼무릎에 얹고 있는 길상좌(吉祥坐) 모습이다. 그림의 맨 위부분에는 아미타부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여러 성중(聖衆)의 무리가 표현되어 있으며 그 아래로는 흰옷(白衣)을 걸친 관세음보살을 위시한 아미타 8대 보살과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이 있다. 이 그림은 운흥사약사탱화(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58호:아래 탱화)와 전반적으로 비슷한 구도와 인물의 형태, 색채를 보여주고 있어 동일 작가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추즉된다. 
약사탱화[固城雲興寺藥師幀畵:시도유형문화재 제358호] 
중생을 모든 병의 고통에서 구하고 치유하여 깨달음으로 인도한다는 약사부처를 그림으로 그린 탱화이다. 왼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는 약사부처를 가운데에 크게 배치하고, 약사부처 주위로는 맨 윗부분에 팔부신중을, 그 아래로는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쓴 보살들을 그렸다. 그리고 화면의 맨 아래 부분에는 좌우로 각각 2분씩 불법을 지키는 사천왕상이 배치되어 있다. 연꽃대좌에 앉아 있는 약사부처는 양 어깨를 모두 감싼 옷을 입고 오른 발을 왼무릎에 올려 놓은 길상좌(吉祥坐)의 자세로 큼직한 키모양 광배를 갖추고 있다.

탱화 [幀畵]란?  
불화[佛畵:불교그림]로서 신앙대상이 되는 여러 존상(尊像)만을 그

리는 존상화와 경전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변상도(變相圖)의 성격을 지닌 것이 있다. 탱화는 기능에 따라 본존의 후불탱화(後佛幀畵)와 신중탱화(神衆幀畵)로 나누어지고 신중탱화는 다시 팔부(八部)신중탱화와 사천왕(四天王)탱화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후불탱화가 본존불의 신앙적 성격을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면 신중탱화는 수호신적인 기능을 띤 것이다. 다만 후불탱화의 경우 본존불이 무슨 불(佛)이냐에 따라 탱화의 구도가 달라지고 신중탱화의 경우에도 수호의 기능을 어디에 강조점을 두느냐에 따라 내용과

구도가 달라진다. 한국의 사찰은 어디든지 신앙대상으로 불상을 봉안하고 그 뒤에 탱화가 걸려 있게 마련인데 일본이나 중국 등지의 사찰에는 이와 같은 탱화가 없다. 물론 한국 탱화와 비슷한 불화(佛畵)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들 불화는 한국 탱화와 같이 직접적인 신앙대상으로 봉안되거나 불상의 뒷벽에 거는 후불탱화로서의 성격을 지니지 않는다. 한국 탱화의 기원은 확실치 않으나 석굴암의 석조탱(石彫幀)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멀리 신라시대까지 소급된다. 

 

2007년 3월 18일[요일]
진주성회 염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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